꿈꾸는 병(病) / 오세영
꿈꾸는 병(病) / 오세영 소녀는 질병을 앓았다. 기울어진 햇빛 속에서 아프리카를 생각하고 있었다. 뜨거운 열사의 지평을 달리는 한 마리 사자, 소녀는 사랑을 꿈꾸었다. 잠 못 드는 밤엔 세계의 끝에서 숨쉬는 에프엠을 듣고 병든 지구에 내리는 빗물처럼 울 줄도 알았다. 러브스토리를 읽으며 인생과 예술이 술잔 속에서 페시미즘에 젖는 것을 보았다. 한 마리 사자가 낮잠을 자는 아프리카 해안의 부서지는 푸른 파도. 소녀는 두려워하지 않았다. 다가오는 죽음을, 다만 하나의 희망이 어떻게 이 지상에 잠드는 것인가를 보고 싶었다. 어둠이 내리는 거리, 사람들이 각기 등불을 켜 들 때도 소녀는 꿈을 꾸고 있었다. 꿈속으로, 꿈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.
한편의 시
2018. 3. 16. 08:44