꿈꾸는 병(病) / 오세영
소녀는 질병을 앓았다.
기울어진 햇빛 속에서
아프리카를 생각하고 있었다.
뜨거운 열사의 지평을 달리는
한 마리 사자,
소녀는 사랑을 꿈꾸었다.
잠 못 드는 밤엔
세계의 끝에서 숨쉬는
에프엠을 듣고
병든 지구에 내리는 빗물처럼
울 줄도 알았다.
러브스토리를 읽으며
인생과 예술이 술잔 속에서
페시미즘에 젖는 것을 보았다.
한 마리 사자가 낮잠을 자는
아프리카 해안의 부서지는
푸른 파도.
소녀는 두려워하지 않았다.
다가오는 죽음을,
다만 하나의 희망이
어떻게 이 지상에 잠드는 것인가를
보고 싶었다.
어둠이 내리는 거리,
사람들이 각기 등불을 켜 들 때도
소녀는 꿈을 꾸고 있었다.
꿈속으로, 꿈속으로
가라앉고 있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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